진시에 왕세자가 조강례를 행하였다.

 

 좌부빈객 정경세, 필선 여이징, 지평 오단, 겸사서 김육, 정언 심동구가 입시하여 『논어』의 '안연문인顔淵問仁'부터 '극장거克將去'까지 강하였다.

 

 정경세가 말하였다.

 

 “'인은 마음의 완전한 덕이다,라는 말은 인이 사덕四德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인은 측은지심側愆之心이다'라는 말에는 발동의 뜻이 있습니다. 의의 수오羞惡, 예의 사양辭讓, 지의 시비是非는 모두 발동하기를 거쳐 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이 완전한 덕이 되는 것은 마치 사시四時가 모두 봄에 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봄은 만물을 낳고 여름은 그 낳은 것을 기르며 가을은 그 낳은 것을 완성하고 겨울은 그 낳은 것을 갈무리합니다. 봄이 만물을 낳지 않으면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어떻게 기르고 완성하고 거두어 갈무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원이 사덕(四徳, 元亭利貞)의 으뜸이고 봄이 사시의 으뜸이며, 사람에게는 인이 사성(四性, 四端)의 으뜸입니다.

 

 '극'이란 적을 이긴다는 '이김'과 같습니다. 만약 고립된 군대가 갑자기 강한 적과 맞닥뜨릴 경우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경우 반드시 이겨 승리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사로운 욕심이 마음에서 싹트는 것을 반드시 힘써 이기고 제거하기를 적을 죽이듯이 한 다음에야 천리天理로 돌아가 애초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란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다' 라는 구절을 보면, 일이 이치에 합당한 것을 '예'라고 하니 예란 '중'을 말합니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예가 아닙니다. '절'이란 그 지나친 것을 절제하는 것이며, '문'이란 그 모자란 것을 돕는 것입니다. 지나친 것을 절제하고 모자란 것을 도와서 중에 맞게 하는 것이 예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천리의 절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인의예지를 중정인의中正仁義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 중은 예이고 정은 지智입니다.

 

 '하루 동안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인을 함께 한다' 는 말은 내가 하루 동안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할 수 있으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인을 행한다는 것이니, 이 말은 인의 효험이 매우 빠르고 지극히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군자가 자기 집에서 지낼 때 하루 동안 자신의 사욕을 이긴다고 해서 반드시 천하가 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감응의 이치가 반드시 이같이 빠르고 크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 그 극기하는 이유는 천하를 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착실하게 할 수 있어서 천하 사람들이 자연히 나와 함께 인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을 행하는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므로 남이 간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인을 행하는 기틀이 오로지 나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 간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하의 학문의 공으로 말하면, 조용히 이끌어 도달하게 하는 것은 강관講官의 일이라 하겠으나 착실히 힘쓰는 것은 오로지 저하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어찌 강관이 간여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저하가 처하신 자리는 극히 중요하여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모두 저하의 어진 마음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만약 학문에 더욱 힘쓰셔서 극기복례할 수 있다면 공효가 투철하여 어질다는 소문이 자연히 밖으로 퍼질 것이니 누가 '우리 임금의 아드님' 이라고 하면서 목을 빼고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사씨(謝氏, 用良佐)가 '모름지기 성품의 치우친 데를 따라 이기기 어려운 부분을 이겨서 버려야 한다[須從性偏難克處克將去]고 한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사람의 기질은 혹은 굳센 쪽에 치우치기도 하고 혹은 부드러운 쪽에 치우치기도 하니, 모름지기 그 병통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아서 다스린다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비유컨대 병을 다스리는 것과 같습니다. 약을 쓰는 자는 반드시 먼저 병이 어디에 있는지 안 다음에 약을 써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옛사람 중에는 성질이 급하여 무두질한 부드러운 가죽[韋]을 차고 다닌 사람이 있었고, 성질이 느긋하여 활을 차고 다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죽은 그 부드러움을 취한 것이고 활은 그 급한 것을 취한 것입니다 대체로 자신의 병통을 알아서 바로잡고자 한 것입니다. 주자朱子의 아버지 주송朱松은 자신의 성질이 너무 급한 것을 늘 병통으로 여겼으므로 스스로 위재韋齋라는 호를 지었으니 이 또한 가죽을 찬다는 뜻입니다.

 

 사현도(謝顯道, 謝良佐)가 이천伊川과 이별한 지 1년 만에 가서 뵈었는데, 이천이 '무슨 공부를 하였는가?' 라고 물으니, 사현도는 '다만 '긍' 자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학문은 절실한 데서 묻고 가까운 데서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씨의 병통은 긍에 있었는데 힘써서 그것을 제거하였으므로 이천이 좋게 여긴 것입니다.”

 

 왕세자가 밀하였다.

 

 "『논어』초권初卷에 시양좌謝良佐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입니까?"

 

 정경세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상채(上蔡, 지명) 사씨謝氏' 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여이징이 말하였다.

 

 “사씨의 이 주는 학문을 하는 데 가장 절실하니 마땅히 몸에 배도록 알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정경세가 말하였다.

 

 “공자 문하의 제자들 가운데 인에 대해 물은 자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 아래에도 인에 대해 중궁仲弓이 묻고, 사마우司馬牛가 묻고, 번지樊遲가 물은 것이 있는데 공자의 답은 각기 그 사람에 따라서 다릅니다. '극기복례' 는 안자가 아니면 할 수 없으나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뵙듯 하며,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 한다'는 것은 또한 중궁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이와 같이 답하였습니다. 안자의 극기복례는 건도乾道이고 중궁의 '경' 과 '서' 는 곤도坤道입니다. 이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 아래에 안연이 그 조목을 물었다[顔淵曰, 謂問其目]'는 말이 있는데, 공자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답하였습니다. 이른바 '예가 아닌 것[非禮]' 이란 모두 사사로운 욕심이고, 천리가 아닙니다. 한 번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예에 맞은 다음에야 '극기복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하께서는 비록 궁중에 한가하게 계실 때라 하더라도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예에 맞는지 상세하게 살핀 다음에 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 사사로운 욕심이 더욱 더 침범하게 되지만 저하께서는 미천한 자와 다르므로 더욱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