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천천히 번역합니다.
서序
논어의 원전 비판에 관한 업적은, 타케우치 요시오武內義雄의 「논어의 연구論語之硏究」 및 츠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논어와 공자의 사상論語と孔子の思想」, 藤塜鄰의 「논어총설論語總設」 등에 의해서 극도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렇지만 타케우치나 츠다 양쪽의 설은 운명적이고도 탄식할 정도로 결정적 분열이 보이며, 뒤이은 연구의 방향을 어떻게 선택할지 절망감을 주고 있다. 나의 연구는, 이 절망적 상황 아래에서, 타케우치의 설의 근거가 되며, 츠다가 부정하는 바의, 《논형論衡》〈정설正說〉편의 기사는 없는 상태를 상정하고, 새로운 연구 위에서의 재출발을 기원하는 바 있다.
나는 논어가 어떤 경과를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와 내용을 가진 것이 되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논어가 성립되었을 당시부터 바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였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제반 연구에 의해 간단히 부정될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 경과를 거쳤을까. 오늘날까지의 제반 연구 및 논어에 관한 전승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과를 가설로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공자 및 그 제자들의 언행은 메모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것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오늘날 논어의 장구의 기원이 그것이다. 그 장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여러 이유에 의해 결합하기 시작했던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무리[群]'라는 이들 장구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 '무리'가 다시 결합하여, 혹은 그 전후나 그 내부에 여러 가지 편집의식 아래, 따로따로였던 장구가 첨가되어, 이리하여 적당한 양에 달하여 '편篇'이 성립되었다. 그 '편'이 여러 개 연합하여 '편의 무리[群]'가 만들어지고, 그 '편의 무리'가 다시 통합되어 오늘날의 논어가 된 것이라고, 이 후반을 논하고 잇는 것이 타케우치 요시오의 「논어의 연구」이다.
이상의 가설은 츠다, 타케우치의 두 가설을 합쳐 어느 정도까지 모순이 없이 통합 절충하는 것이다. 장구의 구절들의 무리[群]가 한 번 성립되면, 이미 시간의 경과라는 여러 전승을 얻는 결과로서, 그것만으로부터라도 전통적 권위를 지니는 것이 되어, 그 '무리'를 다시 편집하는 것은 삼가기 쉽다. 이리하여 일관된 편집이 되는 것은 어려워지므로, 편 전체를 편집의식으로 해설하는 것은 무리를 수반하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타케우치의 팔일편 연구에 있어서 편내의 장구의 순서를, 1 - 2 - 4 - 26 - 6 - 22 - 12 - 위정23 - 9 - 14 - 10 ... 으로 하고 있다. 위정편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상당한 장의 배열이 변경되어, 전체의 구성보다 한 편의 편집의도를 추정하고 있다. 참으로 「나는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감히 억측을 가해서, 장구의 순서에 수정을 가해서, 하간칠편본河間七篇本의 내용을 고찰해 본 것이다.」이다.
이상의 두 편은 장구의 무리를 설정하여, 그 시점에서부터 고찰하면, 위정편은 제 5, 6, 7, 8장의 효에 관한 장의 무리, 12, 13, 14장의 군자에 관한 무리, 15, 16, 17, 18장의 군자된 자의 마음가짐에 관한 무리, 19, 20, 21장의 정치론적인 무리 등 각자의 무리의 전후에 각각 존재하는 독립 장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된다. 팔일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악이라고 하는 테마로 통일된 커다란 무리로, 그 안에 오늘날의 해석에서는 예악이라고 묶이지 않을 수 있지만, 편집자가 무리에 속해 있는 것으로서 생각했다고 한다면, 에악과 관련지을 수 없지도 않은 제 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랑캐의 나라에 임금이 있는 것은 하나라에 위정자가 없는 것만 못하다」와, 제 24장 「의봉인이 공자를 뵙고자 청하여...」등이 있게 된다.
'무리群'라는 관념을 어째서 논어 연구에 가지고 나오냐고 한다면, 타케우치와 같이 편篇을 단위로 하는 것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츠다와 같이 논어가 '깊은 배려' 없이 편집자에 의해 모아진 것으로써, '논어에 대해서 생각하면, 스무 편의 구별을 일단 해체하고, 어떤 정리된 것이 말하고 있는 한 장씩의 무엇인가로써 논어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에도 직접 찬동하기 어렵다. 논어를 솔직히 죽 훑어 읽는다면, 형식상이나 테마상으로 굳어진 장구의 '무리'가 분명히 산재해 있고, 장 수의 다소는 가지각색이고, 그 무리가 형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논어 비판상의 문제이다. 편집이라는 문제를 마음에 안고, 논어를 반복해서 읽을 때, 현실에서 의심 없이 붙잡히는 것은 이 '무리'이다. 이 아슬아슬한 선에서 논어 비판을 재출발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무리'의 문제야말로 논어 성립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가 아닐까. 양梁의 황간皇侃의 논어의소論語義疏에서는, '옛 논어는 요왈 아래의 '자장이 물었다' 부분을 다시 한 편으로 하여, 합쳐서 스물한 편, 편집 순서는 향당편을 제 2편으로 하고, 옹야편을 제 3편으로 하는 등, 편 내에서 뒤집히고 섞여 갖추지 못했다는 설' 이라 하였다. 고논어와 얼마나 다른지 싶어도, 오늘날의 편 내의 문제를 지금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자. 타케우치 요시오 「논어의 연구」에서도 역시 이런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의미는 타케우치의 연구의 전개에도 있다.
제 7편 술이편을 여기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 편에는 테마상에서는 무리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형식상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장구가 '공자 왈'을 주체로 하는데, 부분부분 공자의 행위의 묘사가 산재해 있다. 그것을 괄호로 두르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이 현상은, '공자 왈'로 된 몇 장의 다음에 공자의 행위 묘사를 배치하여 끝맺는 형식을 가진 무리의 반복을 상정할 수 있다. 향당편의 성질을 기본으로 하여, 논어 12편을 전후로 나누는 고찰 방법과 대응시키면, 편집의식에서 보면, 전론 10편의 구성과 같은 종류로 보인다.
'참고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한 해혼후 유하묘 출토 제논어 죽간 해석 (0) | 2021.06.07 |
---|---|
[초록] 자하(子夏)와 그 학파 연구 - 步如飞 (0) | 2021.05.31 |
[논어 안연 1장] 소현동궁일기 정묘년 11월 17일 기록 중 발췌 (0) | 2021.05.24 |
[논어 선진 5 - 12장] 소현동궁일기 정묘년 10월 30일 기록 중 발췌 (0) | 2021.05.24 |
[논어 자한 10 - 11장] 소현동궁일기 정묘년 10월 16일 기록 중 발췌 (0) | 2021.05.24 |